[한능검] 조선후기 농업중심의 개혁사상 Study ♥




조선후기 농업중심의 개혁사상



1. 유형원 (1623~1673)
(1) 반계수록 (1670)
- 유형원의 토지개혁론(균전론)은 사농공상의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은 토지를 국유화하여 토지의 균점과 자영농을 바탕으로 민생안정,
국가재정을 충실히 할 것을 내세웠다.
- 반계수록은 그가 죽은 뒤 그의 인물됨과 내용이 알려지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되어
영조가 직접 그 초고를 읽어보고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반포하도록 명하였다.

(2) 종래의 경부법 대신에 경무법을 쓰고, 호구에 부과하던 역역을
토지에 일괄 부과할 것을 주장하였다.

(3) 자영농을 바탕으로 병농일치를 확립하고, 사농일치의 교육제도, 양반의 문벌제도, 과거제도,
노비제도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4) 한계
- 가정 내의 적서차별, 군대편성에서 양천의 구별, 노비제도를 조심스럽게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등
유교적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였다.

2. 이익 (1681~1763)
(1) 성호학파 형성 : 성호학파의 다양한 개성과 규모는 18~19세기의 새로운 시대 변화를 옳게 이끌어가는 학문전통을 세우게 되었고 정약용은 그 흐름을 집대성한 실학자였다.
① 안정복 계열의 우파 : 조선어학의 신경준, 윤동규, 지리학의 정상기, 수학의 신후담 등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였다.
② 서학의 좌파 : 이벽, 권철신,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2) 성호사설 : 천지, 만물, 인사, 경사, 시문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조선과 중국의 문화를 백과사전식으로 소개, 비판한 것으로 특히 인사부문은 정치, 경제, 가족 등 사회현실 각 부문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성호사설의 곽우록에서 한전론을 주장하였다.
* 한전론 : 한 가정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모의 토지를 영업전으로 정한 다음, 영업전은 법으로 매매를 금지하고 나머지 토지만 매매를 허용하자고 주장

(3) 6좀 : 양반문벌제도, 게으름, 기교(사치, 미신숭배), 승려, 과거제도, 노비
* 이익은 관직도 없는 양반층이 노비를 부려 놀고먹는 구조적 악습을 지적하고 노비법이야 말로 인습 중의 인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노비의 세전법과 매매를 반대하는 등 노비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노비 소유의 상한을 정하고 종모법을 시행할 것을 강조했다. 그도 노비제도 자체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는 데에 이르지 못했고 현실적인 관행의 불합리를 개선하는 수준에서 신분제도의 모순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4) 붕당론 : 조선사횡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에서 발생한 이해득실로 양반은 증가하는데 관직은 일정한데에 따른 선비들의 먹이 다툼에서 발생,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반의 수와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 소농보호책 : 폐전론, 상공업 억제, 1/10세, 사창제 실시 - 유통경제의 발전이 농촌경제를 파탄시키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6) 역사인식 : 삼한정통론으로 안정복에 계승되었다.

(7) 여성관 : 보수적 여성관 - 세끼 식사 준비와 길쌈 등에 힘쓰고 검소해야 하며 남녀칠세부동석을 지켜야 한다. 독서나 강의는 남자가 할 일이지 여자의 일은 아니다.

3. 정약용 (1762~1836)
(1) 실학의 집대성
- 신유사옥과 관련되어 18년 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500여 권의 많은 책을 저술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성호학파의 경학적 기초 위에 그 학파의 비판적, 개혁적 풍토를 계승하고 있었고 나아가 노론 북학파의 북학사상도 적극 수용하여 선배들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진보적인 지식인상을 수립하였다.

(2) 500여 권의 여유당전서
- 마과회통(1794, 제너의 종두법 소개), 아방강역고(1811, 백제의 도읍지가 서울, 발해의 중심지가 백두산 동쪽이라는 것을 고증), 민보의(1812), 대동수경(1814), 경세유표(1817), 목민심서(1818), 흠흠신서(1819), 아언각비(1819, 속어와 속자를 고증)

(3) 사회개혁 사상
- 양반 군역부담에 찬성하여 유생은 사회의 좀이고, 도포 입은 도둑이라고 공박하고, 세상 사람을 모두 양반으로 만들어 양반이 실제로 없어지게 해야 한다. 사족의 경우 직업을 바꾸어 농사에 종사하거나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 사농공상, 포, 목, 우, 빈, 빈의 구직이 모두 성스럽다는 직업윤리를 제시하였고 전업농과 기업농 장려를 주장하였다.

(4) 기예론
-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인륜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기술을 소유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점에도 있다고 보았다.
- 배다리 설계 : 정조가 수원에 행차할 때
- 수원성 축조에 거중기 사용 : 정조가 청으로부터 구입한 고금도서집성에 실린 장테렝즈의 기기도설에서 얻은 지식을 기본으로 연구를 더하여 거중기 고안

(5) 토지제도 개혁론
- 여전론을 처음에 내세웠다가 후에 정전제를 현실에 맞게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6) 3부작 (1표 2서)
- 목민심서 : 지방행정 개혁
- 경세유표 (원제명은 방례초본)
: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 개혁, 이용감(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을 위하여) 설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방의 부유한 농민들에게 향촌사회에서의 공헌도에 따라 관직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자영농을 육성하고, 아직 국가가 사들이지 못한 지주의 토지는 농민에게 경작권을 골고루 분배해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분배는 가족의 노동력을 기준으로 농업 종사자에게 井자로 구분한 토지의 8구를 분배하고 1구의 수확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정전제를 주장하였다.
- 흠흠신서
: 형정에 관한 개혁서로 지방수령들의 백성통치의 주요항목이 되는 범죄의 올바른 정치를 위해 중국 청나라와 조선시대 영조, 정조 연간의 판례를 집대성하였다.

(7) 3론
- 원목 :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며 왕의 권력은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왕은 백성들끼리 약속에 의해 추대된다는 것이다. 왕권신수설을 비판한 계몽사상의 주권재민론이나 사회계약설을 방불케 하는 혁신적인 사상이다.

- 탕론 : 천자를 천명의 대행자로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권력구조 변화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천자는 천명의 대행자이며 천명은 민심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천자가 천명을 거역할 경우 갈아치워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 전론 : 여전제 - 지주전호제를 철폐하여 무상몰수의 방법으로 전국의 토지를 국유화하는 여전제를 주장, 여전제에서 1여는 30호이고 여장이 지휘, 농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과 수확량을 노동력에 따라 분배하는 집단농장제의 형태를 취하였다.
* 전반적으로 정약용의 토지개혁론은 상업적 이윤과 자본주의적 경영을 전제로 한 것으로 농민에게 토지를 갖게 하되 양반 및 상공계층은 제외하고 농업을 통한 상업적 이윤은 추구하게 한 점에서 다른 실학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정약용은 아마도 지향해 나가야 할 궁극적 목표 내지는 방향으로 여전제적 해혁안을 제시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실적 개혁안으로 정전제를 말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상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http://naver.me/Fl6Uk5qX